뽄떼

마리 로랑생

박아녜 2013. 4. 8. 22:33

마리 로랑생/ 나를 열광시티는 것은 뿐이며 또 그림만이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잊혀진 여인 - 마리 로 문서 이미지

 

                         

188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초기에는 데생학교에 다니며 도자기에 도안을 그려넣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순수미술을 하기 위해, 윙바르 회화연구소에 등록해서 그림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1912년 첫 개인전을 열게 되고 호평을 받게 된다.

 

 

1920년 로마에서의 개인전 또한 성공리에 마치게 됨으로써, 여류 화가로써 명실상부한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주로 소녀풍의 여성을 유려하면서도 몽환적인 색채로 그려냈다.

그녀는 독일인 남작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혼자 살다가 1956년 사망했다.

그러나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는 사생아로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멜라니-폴린 로랑생은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어촌 출신으로 스무 살 무렵 파리로 상경,
가정부와 식당 종업원을 거쳐 천과 옷에 수 놓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부유한 남자로, 유력한 가문의 여자와 결혼한 채 멜라니-폴린과 이중생활을 했다.


이처럼 남다른 출생과 성장기는 로랑생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어머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안정된 장래가 보장되는 여교사가 되기를 바랐고,
화가가 되기를 원하는 딸에게 그럴 만한 재능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갈등 끝에 데생 학교에 다니게 된 마리는 도자기의 도안 정도로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곳에서 만난 조르주 브라크의 격려로
정식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욍베르 아카데미로 옮기게 되었고,
처음에는 로트레크와 마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곧 이어 1905년에는 바토-라부아르(Bateau-Lavoir)에 소개되었다.


전위적 화가 및 시인들이 가난한 공동 생활을 하던 그곳에서 그녀는
1905년 피카소의 소개로 시인 아폴리네르를 만났다.
사생아라는 공통점을 지녔던 이 두 사람은 곧장 사랑에 빠졌고,

서로의 예술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정신적 동료가 되었다.

 

그들이 바토-라부아르에 출입하던 5년의 기간은
두 사람 모두의 예술적 재능이 만개한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마리는 1907년의 첫 전시회 이후로 재능을 인정 받기 시작했고,
1914년 두 사람이 결별할 무렵에는 두 사람 모두 영광과 명성의 절정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아뽈리네르와의 결별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별 후 독일인 귀족과 결혼하지만 1차 대전이 일어난다.
그녀는 프랑스의 적국인 독일인의 신분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스페인 망명했다,
물론 이 결혼도 불행으로 마무리되고 남편과의 결별 후에 국적을 회복하여 프랑스로 돌아왔다
다시 파리로 돌아온 로랑생은 벽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녀의 독특한 화법은 더 이상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미술은 큐비즘이 주류가되고 피카소가 화단을 장악했다,
그녀의 화풍은 구태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더 이상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아뽈리네르"의 연인으로서 한때 "살롱"을 사로잡았던 그녀에 대한 추억들만 남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문학가를 꿈꾸었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섰고
그 시대의 "여류"가 겪어야 했던 한계를 같이 절감해야했고.
결국 화가 "마리로랑생"보다 유명시인 "아뽈리네르"의 연인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흐른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들 사랑도 흐른다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 유명한 시가 아폴리네르가 그녀와 이별한 뒤에 지은 시 중의 하나였다.

[Valentine]

평생을 그림에 바친 뒤 70세가 다 되어서도

"자신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 소원했던 것은 단지 어린 시절
절대로 화가가 될 만한 재능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녀의 속에 자리하였던 미술의 열정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녀는 평생 ‘화가의 재능’을 꿈꾸며 살았다.

우리 중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큰 것을 꿈꾸듯이.


그녀는 화가란 당연히 남성이고 "여성 화가"는 희귀한 예외적 존재였던 시절에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를 그리지 않았다.
특별했던 삶, 그리고 빗나간 운명.
그러나 그럼에도 불꽃처럼 더 타올랐던 미술에 대한 열정...

이것이 어떤 의미에선 비참한, 어떤 의미에선 선구자였던 그녀의 이야기다.

그녀의 그림은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 부근에 위치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나 볼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 보다/   내가 하는 일을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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